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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음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8/21 브람스 - 교향곡 제3번 3악장 (1)
  2. 2007/07/27 D-War Ending (2)
  3. 2007/07/25 차이코프스키 - 백조의 호수
posted by 얼음손 2007/08/21 23:03
언젠가부터, mp3플레이어에 가요보다 클래식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일까? 살금살금 기억을 뒤적여보면, 올해초, 우울하게 그지 없는 겨울하늘 아래에서 이 음악을 들은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클래식...을 떠나서 음악에 대한 기반지식이 아~무것도 없기에, 클래식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을 틀렸지요. 어쩐지 귀에 익숙하면서 나를 점점 더 음악속으로 끌어당기는 느낌. 갑자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젯빛하늘아래 가벼운 바람이 부는 언덕이 생각납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가녀린 느낌의 곡이였는데, 곡에대한 정보를 찾아보니까, 이런말이 있더군요.
"이 교향곡은 브람스의 4개의 교향곡중에 가장 남성적이며 웅장하고 묵직하다"
0_0a...

뭐, 음식도, 음악도, 내 스타일대로 먹고, 내 감정대로 느끼면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posted by 얼음손 2007/07/27 20:47

심형래 감독이 만든 D-War의 엔딩곡.

많이 알려졌다시피, 아리랑 편곡한건데. 듣기 좋네요.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얼음손 2007/07/25 21:01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아침에 듣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

언제가 어릴적에 백조의 ... 어쩌구 하는 동화가 있었던거 같았든데,

꽤나 슬픈 이야기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어서,

클래식의 힘찬 선율에 깜짝 놀램;


백조의 호수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해서 간단히 지식인에게 물어보자면 ...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Swan Lake Op.20)']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음악으로 꼽히는 것 중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은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으로부터 작곡을 위촉받아 1876년 4월에 완성한 것으로 모두 4막 29곡으로 되어있다. 초연은 1877년 2월 20일.

 내용은 백조 처녀 전설에 바탕을 두고 독일 전설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29곡으로 구성되어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중 하이라이트 6곡(1곡 정경, 2곡 왈츠, 3곡 작은 백조들의 춤,  4곡 정경,  5곡 헝가리 춤, 6곡 정경)을 선별해서 따로 연주회용 모음곡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백조의 호수 모음곡(Swan Lake Suit Op.20A)이다. (연주시간 : 25분)

 독일 공국의 왕자 지크프리트는 성년식을 맞이하게 되는 날 밤, 친구들의 권유로 백조사냥을 간다. 왕자는 거기서 백조의 여왕 오데트와 만나 그녀와 동료의 백조들이 모두 악마 로트발트의 마법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밤에는 사람으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 마법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순수한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지크프리트는 다음날의 성년식에 오데트와의 결혼을 발표하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악마 로트발트의 교묘한 흉계로 어긋나고 호수의 물을 넘치게 하여 왕자와 백조여왕을 빠뜨리려 하여 그들은 언덕위로 도망간다. 그리고 왕자는 '나는 언제나 당신을 위해 죽겠노라'라 말하고 둘은 호수에 몸을 던진다. 이때 백조들은 두 사람의 강한 사랑의 힘으로 마법이 풀려 아름다운 처녀들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지크프리트와 오데트의 사랑은 저 세상에서 맺어지게 된다는 줄거리로 되어있다.

[페테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러시아)]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 5월 7일 러시아의 보트킨스크에서 태어나, 1893년 11월 6일 역시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레닌그라드)에서 53세로 세상을 떠난 러시아의 작곡가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른바, 러시아 5인조 등의 광신적인 민족주의가 음악계를 휩쓸고 있을 때, 이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서구적인 전통에 바탕을 든 보편적인 어법으로 음악을 쓴 사람이다. 그는 5인조의 공식적인 생각에 공감을 갖지 못했고 그 과장된 만네리즘을 싫어해서 무엇보다 그는 순수한 감정의 표출에 중점을 두어 보편적이고 영원성이 있는 음악을 썼다. 물론 러시아의 민족 음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소재로 사용하였지만, 그것만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공통적인 수법으로 일반적인 감정을 노래한 것이다. 그의 기교는 민족주의 5 인조보다 우수하고 세련되어 있으며, 감정 내객은 대가다운 풍부함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이 그의 음악을 오늘날에도 세계인류가 애호하고 있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러시아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에 의해 비로소 세계적으로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근교인 시골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모친의 지도로 피아노를 배우고 지방의 민요를 익혔다. 그러나 그가 10살 때, 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하자, 그 곳 법률 학교에 입학하였다. 1859년 19살 때, 학교를 졸업하고 법무부의 관사로서 근무하게 되었으나, 음악에 대한 애착과 정열에 못이겨 22살 때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에 들어갔다. 1865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차이코프스키'는 다음해 1월 니콜랑니 루빈스타인이 창설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임명되어 이때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하였다. 최초의 대작인 <교향곡 제1번>이 초연된 것은 1868년 그가 28살 때이다. 이 곡이 성공하자 그는 계속 작품을 내놓았다. '차이코프스키'가 돈 많은 철도 운영자의 미망인 맥크 부인으로부터 연금 6,000루불을 원조 받기 시작한 것은 1876년부터이다. 이로써, 생활이 안정되어 작곡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1877년에는 음악원의 제자인 안토니나 미류후와 마 음에 없는 동정 결혼을 한 결과, 3개월도 못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이 충격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고생을 하게 되나, 그는 한때 이탈리아, 스위스등지로 요양을 하기도 하였다. 1878년 음악원을 사직한 '차이코프스키'는 구라파 여러 나라와 미국 등으로 순방하면서 자작품을 지휘 연주한 외에는 주로 창작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1893년 그의 <비창 교향곡>이 초연된 5일후, 당시 러시아 전역에 유행했던 콜레라에 걸려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