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 한권을 다 읽었습니다. "위대한 패배자" 이름이 참……. 뭐랄까, 저에게는 친근하고, 따뜻했기에 부담 없이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목차를 보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 사람들이 과연 패배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말 안타깝게, 간발의 차로, 혹은 너무 느긋해서 세상이 말하는 "승리자"의 자리를 빼앗긴 사람도 있지만 말이죠. 대다수는 충분히 인생에서 많은 권력, 물욕, 명예 등을 한껏 누리다가 가거나 혹은 충분에 누린 사람들입니다. 작가는 지금 이름이 잊히거나,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는 싸움에서 패한 사람들을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어 패배자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을 다 바쳐서 뭔가에 전력투구하고 스러져버린 사람들을 우리가 패배자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은 후에 10여년도 전에 TV에서 우리 뇌리를 때리던 CF가 떠올랐습니다.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라던 그 인정머리 없던 속삭임은 제 머리에서 오랫동안 진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는 못한 향기를 남겼었습니다. 우리는 왜 꼭 1등을 해야 하는 걸까요? 작가의 "노벨상이 종종 좀 더 철면피 같고 좀 더 추악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의 차지" 혹은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온갖 추악한 짓을 행하는 것에서 이미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라는 말은 이 시대의 승리자를 질타하는 표현인 듯합니다. 물론, "대통령" 혹은 "노벨상 수상자"등이 나타내는 승리자가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자는 어딘가 모르게 비정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메마른 사람인 느낌이 있지요. 반면에 패배자들 중에서는 인간적이고, 호감이 가며, 표독스럽지 않은 정이라는 향기가 납니다. 물론 승리자중의 예외에서와 같이 패배자들 중에서도 정말 동감, 동정표를 던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죠.
오늘날에는1등의 자리는 정해져있고, 그 길고 긴 승리의 여정에 참여하는 십자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승리자가 여정의 끝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서 모든 사람에게 칭송받고 이름을 남기는 아름다운 모습 이였지만, 이제는 권력과 권모술수란 이름의 칼로 그 길 가운데에 미어터지는 경쟁자들을 베어 넘기는 아귀다툼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한 번 상상해보라고 합니다. 승자들만 사는 세상은 어떨 것인지. 오로지 정상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사람들,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온갖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인간적인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끼리 살아가는 사회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제 생각에는 젖은 담배 재떨이에 담배를 끄고 가래침한 번 뱉으면 그런 사회에서 풍기는 향기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저는 패배자라는 단어의 의미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승리자의 정의를 바꿀 때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승리자 이지만, 승리자가 사회에 넘쳐나지만, 그들은 정상에 오르는 데만 혈안이 된 것이 아니라, 승복할 줄 알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래서 오히려 그들로 인해서 힘겨운 세상을 살아갈만하게 되는 것. 이런 승리자가 넘치는 사회라면 어떨까요? 이런 의미에서 진정 우리 가정을 지키는 50대 아버지, 어머니를 승리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들고 가난한 시대에서 태어나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와 싸워서 혼자서 땅을 딛고 일어나 지금 다시 경제위기라는 현실 속에 서계신 부모님. 한 직장에서 가정을 위해 자신의 꿈은 가슴에 묻고 묵묵히 자기 몸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싸우는 우리 대한민국의 50대! 쓰린 소주와 마른안주로 하루를 정리하고 자식들의 웃는 얼굴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그분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50대 부모님들을 무엇으로 표현한들 가득 찰까요? 세상의 미디어와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로 이런 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때론 자신들의 힘으로 눌러버려 패배자의 모습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모여서 우리를 만들고, 이 사회를 이렇게 지탱해온걸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 부모님들이 진정 살아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이런 사회에서는 승리자로 불리지 않지만, 쓰러지면 다시 일어섰던 오뚝이 인생의 승리자라고 인정받고 칭송받아 마땅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우리에게 많은 패배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억해야 할 것을 시사 합니다. 너무나 치열해지고 있는 우리 20대 청년들의 삶 가운데 패배는 더 이상 하기 싫은 것, 피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학업, 취업, 연애, 대인관계 등에서 실패할 지라도, 그 가운데 승리가 숨어있음을, 실패는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좀 더 영리하게 출발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끔 혹은 매번 부딪치는 패배라는 벽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계속해서 벼랑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해서 상처 입히며 나아가기만 하겠죠. 또한 승리가운데 있던지, 패배가운데 있던지 그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반추해가며 나아갑시다. 이 승리가 어떤 승리인지 스스로 물어봅시다.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지 않았는지, 자기에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말이죠. 이 세상의 승리자들은 많은 것을 잃었고 파괴했습니다. 가족, 건강, 평화,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 스스로를 그리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 등등. 사회는 더 빨라지고, 경제는 어려워졌으며, 물질이 최고라고, 남을 밟고 올라서라고 우리 내면에 소리쳐 왔습니다. 이런 때 일수록 왜 1등이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신중하게 스스로의 답을 찾아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수도 없이 말하는 이름을 남기는 승리자 보다는, 사랑을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소외된 이웃들에게 남기는 승리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